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불안정한 위치,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자기계발을 꾸준히 하였다. 새벽에 중국어학원에 다니고, 다른 전공으로 대학에 편입해서 야간대학을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큰 변화는 있지 않았다.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고 6개월 만에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하고 이후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서 육아를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아이 낳고 남들은 살이 안 빠져 고민이라고 했지만, 나는 살이 쭉쭉 빠져서 결혼 전 몸무게보다 훨씬 더 줄었으니까. 47킬로로 임신 전에 입던 청바지를 입으면 허리가 줄줄 흘러 내렸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손에 한포진이 생기고 발바닥에도 한포진이 생겨서 물집이 생기고 터지고 온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모유수유를 해서 약 처방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가면 나아지겠지 하고 버텼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원래 시신경이 약해서 청력이 좋지 않았는데 이명 증상까지 나타났다. 이 두 가지 증상은 약해지긴 했지만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와 동고동락을 하고 있다.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이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직장 다니다가 집에 있게 되면 더 살이 찌고 얼굴이 좋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일을 안 하고 집에 있으니 하루하루 더 말라가고 건강도 안 좋아졌다. 이러한 성향은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농부의 딸로 태어나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밭일도 하고 외양간의 소똥도 치웠다. 언니나 여동생은 힘들다고 집안 일을 돕는 것으로 대신했지만 나는 집안일 보다는 밖에 나가서 밭일을 하는 것이 성취감도 있고, 힘도 덜 들었다. 그때부터 목표를 세우고 달성 하는걸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해야 할 일을 끝내고 났을 때의 행복함, 성취감, 그리고 노동의 댓가로 받은 용돈이 좋았다. 지금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난 저만한 나이에 밭에 나가서 일도 하고, 저녁밥도 차려놓고 부모님을 기다렸었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런 이야기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아동학대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
일을 안 하면 도태 되어 있는 것 같고,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불안했다. 그래서일까 돌전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그건 바로 풍선아트였다. 그때 당시에 돌잔치에는 풍선장식이 꼭 들어가는 시기였다. 내가 홍보만 잘하면 주말을 이용해서 돈을 벌수 있을 것 같았다. 웨딩홀이나 돌잔치 전문 업체에 전속으로 계약을 하면 팀을 꾸려서 효율적으로 일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다음카페에 파티뉴스라는 카페를 만들고 맘 카페를 이용해서 홍보하고 내 카페로 회원을 유입시키고 예약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이때부터가 내가 인터넷카페에 관심을 가지고 사업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첫걸음이었다.
풍선 장식 일은 꾸준하게 들어왔지만 돌도 안 된 첫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일 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또한 운전을 못해서 주말에 남편에게 부탁을 해야 행사장에 갈 수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오전에 풍선 장식을 만들고 점심 즈음 남편이 오면 차에 실고 행사장에 가서 장식을 하고 돌아왔다. 뿌듯함이 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와 남편까지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 시기 남편이 동업으로 쇼핑몰을 운영했었는데 동업자와 결별을 하게 되었고 동업자 대신 일을 맡아서 해줄 동료가 필요했다. 이렇게 돌 지난 첫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남편과 출퇴근하며 인터넷쇼핑몰 운영에 뛰어들었다. 내가 운영했던 파티뉴스 다음카페는 친언니에게 위임을 했다. 나에게 위임을 받은 언니는 몇 년 동안 카페운영을 하면서 주말마다 소소하게 돌잔치 풍선 장식과 돌상 데코 일을 맡아서 했다.
남편과 인터넷쇼핑몰을 하면서부터는 퇴근 후 집에 와서 바이럴마케팅을 직접 하기 시작했다. 책을 보고 인터넷을 검색해가면서 블로그 운영과 지식인에 답변하는 것을 배우고 실행하면서 인터넷쇼핑몰 주문이 차츰 늘어났다. 하루 30만원이었던 매출이 50만원이 되고, 80만원이 되고, 100만원이 넘어갔다. 매주 수입해서 들어오는 수입물량도 점차 늘어나서 박스단위로 수입해오던 것이 컨테이너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일이 많아지고 바빠질수록 더 활력이 생기고 몸이 더 좋아져갔다. 몸이 좋아져 간다는 건 살이 찌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활동성 있는 사람이 아이 키우면서 집에서 있을 때보다 밖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일하고, 눈에 보이게 실적이 좋아지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 밤 세워 일하는 것도 즐거웠고, 하루하루 늘어나는 택배량과 매출을 보면 힘든지도 모르고 일했다.
이때 내가 생각한건 “아~나는 일을 해야 하는 여자구나. 일 안하고 집에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기는 구나” 라는 깨달음이었다. 목표를 가지고 성취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생활이 활기차지고 존재가치를 느꼈던 것 같다.